서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목회적 권면을 하고 있는데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뿐만 아니라 디모데를 통해 양육을 받는 모든 교회 성도들도 이렇게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권면이기도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는 두 종류의 성도가 있다. 하나는 일꾼 성도요, 다른 하나는 일감 성도다” 여러분은 다 일꾼 성도인 줄을 믿습니다. 일감 성도가 되면 안 됩니다. 나 하나 때문에 교회가 본질적 미션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무엇인지 답을 얻고 생명구원의 기둥, 세계선교의 기둥으로 우뚝 서는 증거가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영적 분별력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4:1~2)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교회 안의 거짓된 자들을 통해 거짓된 가르침이 들어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이 언급하고 있는 당시의 거짓된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영혼만 선하고 육체나 물질은 악하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두 가지 극단적 성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하나는 방종을 일삼는 쾌락주의자고 다른 하나는 극단적 금욕주의자였습니다. 이 중에서 특별히 더 문제가 되는 것은 극단적 금욕주의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의 배후에는 분명히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영적 분별력을 가져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3~5)
사도 바울은 당시 금욕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이 혼인과 음식물에 관련된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들은 육체를 악하다고 여겨 혼인 자체를 부정했고 또 특정 음식은 먹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신 제도입니다. 히13:4을 보면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느냐 아니냐는 어떤 음식을 먹느냐, 안 먹느냐가 결코 아닙니다. 히13:9을 보면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호4:6을 보면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세상 지식이 아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2. 경건의 훈련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6~8)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으며 경건에 이르도록 연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한 마디로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경건의 본질적 의미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깨졌습니다. 종교개혁가 요한 칼빈의 표현대로 하자면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간을 영원한 멸망 길로 가게 하지 않으시고 회복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 깨진 형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서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각인, 뿌리, 체질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에 이르는 훈련입니다. 특별히 이렇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가리켜 사도 바울은 ‘연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연단이란 당시 운동경기에 나가는 선수들이 경기에 나가 승리할 수 있도록 육체를 단련시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마지막 몇 번의 고비를 넘겨야 합니다. 그 고비를 뛰어넘는 시간표가 있어야 근육이 생기고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는 체력이 준비됩니다. 마찬가지로 경건에 이르는 삶도 뛰어넘어야 할 고비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로 고난이라는 것으로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때 영적인 눈을 뜨고 보면 그 고난이 결코 고난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믿음으로 뛰어넘을 때 비로소 놀라운 영적 신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5:3~4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벧전1:7을 보면 베드로의 선포가 나옵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불로 연단을 받는 시간표를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뛰어넘으면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삶을 살게 됩니다.
결론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역사의 연구』라는 책을 썼는데 내용을 보면 인간의 모든 문명과 문화는 역경의 소산이라는 일명 ‘역경설’을 주장했습니다. 인류 문명을 개척한 민족들이 따뜻하고 온화한 땅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 불리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자연재해로 인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올라가면서 문명의 꽃을 피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도 모두 이런 연단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여러분 앞에 어떤 문제와 사건 그리고 어떤 환경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세워 가시는 과정이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8절을 보면 이런 연단의 시간표가 범사에 유익하며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의 능력을 체험하고 육신의 죽음 이후 영생의 축복을 누리는 보장된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처럼 금생과 내생이 보장된 축복을 누리며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당당히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