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 / 2021. 3. 12. 22:27

박지성 -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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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V 시절 박지성

1. 어린 시절

박지성은 1981225일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아버지 박성종 씨의 고향인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서 자랐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원으로 이사한 박지성은 산남초등학교에서 축구의 길로 입문하였으나, 산남초등학교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세류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됩니다. 곧바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망한 어린 재능으로 평가받으면서 다수의 학교로부터 스카우트 대상이 되었습니다. 박지성은 어린 시절부터 헌신적인 플레이와 왕성한 활동량, 정확한 패스와 드리블 능력을 갖춘 선수로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그의 작은 체구는 축구를 하는 데 있어서 약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박성종 씨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정육점을 운영하면서 아들의 축구선수가 되고자 하는 꿈을 위해서 뒷바라지를 하게 됩니다. 박지성은 체격을 키우기 위해서 고기뿐만 아니라 개구리, 녹용, 사슴 피까지 보양식으로 먹었습니다. 1998년에 수원공업고등학교 축구부 소속이던 박지성은 고등부 전국 체전에서 팀을 이끌고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왜소한 체격 때문에 그를 원하는 프로팀이나 대학 팀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수원공고 축구부 감독이었던 이학종 감독의 추천으로 박지성은 어렵게 명지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명지대에서 주전 멤버로 뛰던 19991, 박지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던 올림픽 대표팀과의 연습경기를 가질 기회가 생겼고,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친 그는 당시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감독의 눈에 들어 올림픽 대표에 발탁되었습니다. 그 이후, 2000 45, 라오스와의 아시안컵 예선 경기에서 A대표로 데뷔합니다.

 

2. 클럽 커리어

박지성은 2000년 일본 교토 퍼플 상가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2000년 봄, 한국에 급성장 중인 유망한 축구 선수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당시 교토 감독이었던 기무라 감독이 스카우터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명지대 연습경기를 관전합니다. 기무라 감독은 원래 염두에 두고 있던 유망한 선수 대신 연습경기에서 걸출한 활약을 펼친 박지성을 선택해 교토로 데려오게 됩니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교토로 이적한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팀을 이끌어 1부 리그 승격과 천황배 축구 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천황배 결승전 전날이 교토와의 계약 만료일이었으나, 박지성은 팀과의 의리를 지키며 무보수로 출전하여 1골 1 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2:1 역전 우승을 이루어 냅니다. 2003년 거스 히딩크 감독의 PSV 아인트호벤으로 이적하면서 유럽에서의 선수 생활을 시작합니다.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던 입단 초기에는 팬들로부터 수많은 질타를 받으며 축구선수로서 자신감이 떨어졌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지성은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과 히딩크 감독의 지도로 위기를 극복하며 2003/04 시즌 막판에는 완전히 네덜란드 무대에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2004/05 시즌에는 같은 포지션에서 뛰던 팀 동료 아르연 로번이 첼시로 떠나면서 박지성은 더 많은 선발 출전 기회를 잡게 되었고, 그의 가치를 증명하는 활약을 하게 됩니다. 같은 시즌, AC 밀란과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에서 골을 터뜨리는 등 맹활약으로 주가를 올리며 빅클럽들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마침내 2005 7,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잉글랜드 최고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관심을 받고 프리미어 리그로 진출하게 됩니다. 그 후로 7시즌(2005~2012) 동안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리그 우승 4, 챔피언스 리그 우승 1회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축구 선수로서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2012 2년 계약을 맺고 퀸즈 파크 레인져스 이적한 박지성은 2시즌(2012~2014)동안 활약한 후, 2014년 친정팀인 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에서 1년 임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합니다.

 

J.S Park 13

3. 박지성 선수의 특징

박지성 선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왕성한 활동량입니다. 박지성은 선수 시절 경기장 곳곳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누볐습니다. 어마어마한 활동량 덕분에 그는 산소탱크’ ,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주로 왼쪽 미드필더로 뛰었는데, 맨유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시절 팀 동료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나 루이스 나니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박지성 선수는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인 지시로 상대팀 플레이메이커를 끊임없이 그림자처럼 마크하며 봉쇄하는 역할을 잘 수행했기 때문에 수비형 윙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특히, 2009/10 시즌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만난 AC 밀란과의 경기에서 박지성은 AC 밀란의 플레이메이커 안드레아 피를로를 사냥개처럼 따라다니며 완벽하게 차단한 장면은 피를로의 자서전에도 기록될 만큼 인상 깊었습니다.

 

4. 개인적인 생각

박지성 선수는 소속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하는 선수였지만, 대표팀에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다고 생각합니다. 피치에 박지성이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표팀 전체의 사기가 올라가는 느낌이 확 들었습니다. 실제로 박지성이 경기장에 있고 없고에 따라서 대표팀의 경기 내용이 180도 달라지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최근에는 팬들 사이에서 손차박 대전이라고 해서 손흥민, 차범근, 박지성 세 선수 중 누가 대한민국 대표팀에서 가장 큰 업적을 남겼는가라고 하는 주제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솔직히 차범근 선수의 현역 시절은 제가 너무 어렸을 적이라 기억이 나지 않아서 제외하고, 손흥민과 박지성 두 명의 선수만 놓고 생각했을 때 저는 박지성 선수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손흥민 선수 역시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표팀에서의 영향력은 박지성 선수가 앞선다고 생각합니다. 손흥민 선수는 현재 만 28세로 아직 젊기 때문에 소속팀 토트넘에서 맹활약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대표팀에서도 좋은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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